난임, 그 긴 여정의 시작

'끝이 없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난임으로 겪고 있거나 겪은 이들이라면
한 번쯤 품었음직한 생각이자 마음이다.
누군가는 '아이 갖는 게 뭐 어려운 일이냐'고
대수롭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 있다.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듯
각자의 상황에 따라 그저 묵묵히 아이를 기다리는 이들이.
결혼한 지 10년차가 지나는 동안 우리 부부는
우리 스스로를 딩크족이라고 불렀다.
그 별칭이 결코 싫지 않았다.
나와 남편, 그리고 생후 2개월 때 만나
어느덧 17살이 된 형제 고양이 두 마리,
우리 가족은 나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으니까.
지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긴다면
낳겠다고 말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이가 간절하지도 않았다.
언제든 훌쩍 여행을 가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는
꽤나 매력적이고
부모로서 한 사람의 인간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가에 대한
심적, 경제적 부담감도 컸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아이를 갖지 않았던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언제든 우리가 원할 때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째 추적 관찰하며 지켜보던
자궁근종의 크기가 더 이상 수술을 미루기 어려울 만큼
뱃속에 크게 자리 잡았을 때,
그리고 수술을 하고 나면
가임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결혼 후 처음으로 임신에 대한 아쉬움(?)이 고개를 들었다.
의학적으로 결코 적지 않은 나이가 갖는 무게감도 컸다.
'아이를 갖지 않는다'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엄연히 다른 말이니까.
여전히 아이가 간절하지 않은 데다
시험관 시술이라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갖는 데
거부감이 있던 남편을 설득하고 설득해
집에서 가까운 난임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임신 준비를 위한 기본 검사를 하고 들어간
진료실에서 우리는 자연 임신이 힘든 상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중에 자세히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시험관 시술로는 '충분히' 임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도저히 결과를 납득할 수 없어 찾았던
서울대병원과 미즈메디에서의 소견도 마찬가지.
2020년 1월, 그렇게 우리 부부는
공식적으로 난임부부가 되었다.
그로부터 만 3년이 지나고도
우리는 여태 난임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시험관 시술만 시작하면 금세 아이가 올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에 불과했다.
뭣 모르던 저차수에 화유와 염색체 이상 유산을 겪다 보니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덧 순식간에 고차수가 되었다.
유산의 위험을 줄이고 건강한 임신을 위해
만 2년 반 가까이 PGT 검사에 도전 중이기도 하다.
분명 모든 순간이 평화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언제든 그만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막막한 순간도 돌풍처럼 찾아와 흔들었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포기하면 그대로 '엔딩'
포기하지 않으면 '해피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