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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당신 탓이 아니에요

기다림愛 2023. 10. 16. 18:05

신기루를 본 건 아닐까?
한동안 우리 부부에게 일어난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특히 그날 이후로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아이와 작별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오래된 지인이 갑작스럽게 연락을 해왔다.
결혼 10년차가 다 되도록 임신이 되지 않아
포기하고 있던 차에 생리가 없어
병원에 가보니 임신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혹시나 아기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내내 주변에 알리지 못하다
임신 9주차에 접어들고 아기 심장소리를 듣고나서야
자기 가족들보다도 내게 제일 먼저
임신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기쁜 일이었다.
그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다방면으로 노력한 끝에 어떤 생각으로
아이 없이도 부부 둘이서 행복하자 결심했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잘 알고 있었기에
지인의 뱃속에서 예쁘게 자리 잡은 초음파 사진이
너무나 씩씩하게 뛰는 심장소리가 기특했다.
 
그리고 우리가 몇 년째 병원을 다니며
임신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자신들의 임신 소식을 전하기가
망설여졌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그런 좋은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으면
오히려 섭섭했을 거라고,
너무나 축하한다...
...고 사람 좋은 소리를 했다.
괜찮은 척했다.
 
그런데 내 마음은 괜찮지 않았다.
우리는 임신 안정기에 접어들고서
주변에 알릴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 지인은 우리의 사정을 알 리 없었다.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모른다.
앞으로도 말할 생각은 일절 없다.
 
그리고 난임인 우리 상황을 고려해
얼마나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소식을 전했을지
오래 함께 알아온 시간만큼
얼마나 배려 넘치고 따뜻한 사람들인지
충분히 알고 있기에 그들을 탓할 순 없었다.
 
'고작 초기 유산에 이렇게까지 슬퍼하나',
'또 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내 마음은 괜찮지 않았다.
누구도 내 마음을 이해해줄 수 없을 것 같아
몰래 혼자 울기도 했고 
아이를 품었던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런가
의연해 보이는 남편에게도 섭섭하고 서운했다.
 
유산으로 힘든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남긴다.
제법 시간이 지나 남편에게 물었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냐고,
그랬더니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자기도 무척이나 슬프고 또 슬펐다고.
그렇지만 자기마저 울면
힘들어하는 나를 지탱해줄 수 없을 것 같아
슬프지 않은 척했을 뿐이라고 했다.
마냥 철 없고 무심할 것 같던 남편도
어쩌면 자기를 무척이나 닮았을 아이를
보지 않았는데도 그리워했다.
 
한참 하늘을 원망하고 무력하고
다시는 마음을 잡기 어렵다 생각했던 나를
붙잡아준 말이 있었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초기 유산은 의외로 흔하게 일어난다.
전체 임산부의 15%가 자연 유산을 경험하고
자연 유산의 80%는 12주 이내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원인은 태아의 염색체 이상이다.
우리도 태아 염색체 검사를 통해 유산의 원인이
태아 성 염색체 개수 이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하늘은 어쩜 이렇게 유독 내게 가혹한지’
나와 같은 물음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리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 유산 사실을 알리게 됐는데
수월하게 첫 아이를 가진 줄 알았던 그 친구도
실은 두 번의 계류유산 끝에
지금의 아이를 만나게 되었노라고,
그러니 우리 부부에도 머지 않아
예쁘고 건강한 아기 천사가 찾아올 거라고
진심을 담아 빌어주었다.
 
다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
경험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이별을 묵묵히 견디며
인내심 있게 행복을 기다리고
끝내는 해피 엔딩을 만난 이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많다.
다음 차례는 우리 차례다.
그러니 떠난 아이를 위해 울고 슬퍼하되
다음 번에는 건강하게 엄마아빠에게
아장아장 걸어오라고
아이에게 지치지 말고 초대장을 보내자.
한창 아기 천사들과의 놀이에 빠져 있는
우리 아이가 엄마아빠에게 얼른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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